Bumhan Yu
나의 밤은 길다

나의 밤은 길어, 그래서 꿈도 길지.
가끔 헤메는 기분이 들어 길을 잃진 않았는데도.
진실함, 그 기다림에 지친 난 이 사회의 길치.
- The Quiett "섬" 中

  • 지면으로만 만날 수 있던 늙은 화가를 직접 만났다. 조금도 모난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온화함이 인상깊더라. 지망생 자격으로 학과장 교수를 만나는 자리이니 당연히 긴장되기도 하였으나. 수십년 묵묵히 그림을 그려온 거대한 인물 앞에서 꼴에 연필 좀 잡아봤다고 나서는 것 같아 내심 움츠러들었다. 몇 마디의 조언을 듣고 돌아나오는 길, 안도감인지 불안감인지 모를 기분에 사로잡혔다. 걷고 있는 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던 나는, 지금 당장 발을 딛고 선 이 길 또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 하룻밤을 새우고 이틀밤을 새우고 어느 순간 나도 몰래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몇 시간만에 다시 깨어나고. 일조 주기라는 말이 무의미하게끔 멋대로 돌아가는 나의 하루하루는 매 순간이 꿈같다. 깨어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마저 돌아보면 꿈 속이었던 것만 같으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 가끔 헷갈린다. 잠들어 있지 않고 취해 있지 않아도 자꾸만 서둘러 깨어나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붙어다닌다. 지금 나는 정말 깨어있는 건가.


  •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는 일. 옷을 갈아입듯 가면을 갈아쓰는 지극히 인간적인 일. 너와 함께 있으면 네가 되고, 그와 함께 있으면 그가 되는 나는 - 정작 나 혼자 있을 때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묻혀온 타인의 흔적들이 온통 내 몸을 덮어버려서 거울을 보아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타인이 내게 갖는 기대와 믿음들이 어느새 내 것이 되었고, 이제 나는 스스로에 대해 기대하고 믿는 일조차 남의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나의 밤은 길다. 밤에 잠들어도 밤에 깨고 낮에 잠들어도 밤에는 깨어나므로 눈을 뜨면 언제나 밤이다. 방금까지 보던 것이 꿈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들이 또다시 꿈만 같구나. 무엇을 붙들고 있어야 하나.
2009/01/08 06:13 2009/01/08 06:13
http://www.baadaa.net/kc/trackback/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