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어른 아이

new york days 2008/12/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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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김종길 "성탄제" 中

  • 습관처럼 밤을 새우고 아침에 누웠다가 전화벨 소리에 곧 눈을 떴다.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엄마의 목소리 뒤로 왁자지껄한 가족들 소리가 들리더라.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잘 차려지지 않아 뜻없이 중얼중얼 떠들다 곧 끊고 이내 다시 잠들었지만, 어렴풋 지금도 내가 누군가와 닿아있구나 잠시 느꼈다.

  • 내 전화기는 평상시엔 시계로 화장실에 갈 땐 게임기로 기능하지만, 정작 전화통화 기능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전화를 걸 사람도 내게 전화를 걸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때에는 전화기가 곧 밥줄이라 혹시라도 전화 한 통 놓칠세라 신경이 과민해질 지경이었는데, 이젠 이따금 전화기를 잊고 외출할 정도로 무뎌지고 말았다.

  •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사람다울 수 있다고 했나. 언뜻 사람들과의 교류를 등지고 사는 듯해도, 은밀하게 온라인 상에 블로그란 둥지를 틀고 사는 나도 다를 바 없나 보다. 휴대폰의 마지막 걸려온 통화 시각은 3주 전이요, 누군가와의 마지막 속깊은 대화는 언제인지조차 까마득해도, 지극히 간접적이나마 내가 누군가와 닿아있다는 상황에 위로를 얻게 되는 모양이다.

  • 2009년으로 나도 서른살이 된다. 어릴 적엔 서른살이면 다 큰 어른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나는 아직도 아이인 것 같다. 김종길 씨가 무슨 마음으로 서러운 서른살이라고 읊조렸는지는 몰라도, 내가 문득 내 부모의 그 시절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그 무렵의 나를 돌아보기가 어째선가 처연하다. 부모 앞에서 자식은 평생 아이요 자식에게 부모는 끝까지 어른일진대, 어른인 척하는 아이가 되는 기분이랄까.

  • 새해가 되는 자정이라면서 서울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은지 벌써 여섯시간이 됐지만, 이곳은 아직도 2008년 마지막 날에 머물러 있다. 내 부모와 내 누나들은 지금쯤 2009년 처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을 텐데. 역시 나는 막내라선가, 식구중 가장 늦게 서른살을 맞았듯이 식구중 가장 늦게 새해도 맞게 되는가 보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창밖을 보니 어스름 지는 햇빛이 붉다. 오늘 저녁은 가족이 조금 그립다.
2008/12/31 16:06 2008/12/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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