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를 마시고 알딸딸한 취중에 서울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피로가 쌓인 탓인지 술에 취한 탓인지,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아 수시로 머뭇거리게 되더라. 한참 별것없는 소리를 주절대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같은 콧김이 새어나왔다. 말하지 않으면 말하는 방법을 잊을 수도 있는 건가. 담배를 끊고 지낸지 반년이 넘고 일년이 되어가지만, 두꺼운 솜이불조차 얼음장처럼 느껴지는 밤에는 아직도 간혹 독한 담배 생각이 나.
- 모든 것이 조각조각 쪼개지는 것 같아서 가끔씩 숨을 고르곤 해. 몇 년동안 몇 번의 이사를 거치고 몇 번의 신분변화를 겪고 나니, 과도기적 긴장감을 온전히 벗지 못하고 지내는 느낌이랄까. 언제라도 방을 빼서 이사할 수 있도록 짐도 늘 반쯤만 풀고 살아. 사람을 만나도 그렇게 반쯤만 여는 마음, 직업을 가져도 공부를 해도 그만큼씩만 열고 닫는 마음으로. 십년이 넘게 줄곧 과도기를 거치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면, 이게 과도기가 맞긴 한 걸까. 의심에 집착하는 버릇이 날 뿌리내리지 못하게 해.
- 십수년 살던 하계동 집을 떠난 이후론 어딜 가도 망설임없이 "우리동네", "우리집"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2년간 살았던 경기도의 모 군부대도, 1개월 남짓 머물렀던 홍제동 아파트도, 뉴욕에 와서 짧게 길게 머물렀던 호스텔이며 미드타운 아파트, 지금 살고 있는 브루클린 셋방까지도. 그저 잠시 머물다 곧 빠져나가야 할 숙소같은 느낌이니까. 돌아보면 그 장소들에 조금씩의 향수가 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고작 그 정도인 거지. 뿌리가 없어 불편한 짐승. 연못 전체가 부초의 집이지만, 연못 어느 곳도 부초의 자리는 아니잖수.
- 연속선 위를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이 부러울 때가 있어. 전공 하나를 붙들고 끈질기게 공부하는 사람, 한 직종에 매진하며 경력을 이어가는 사람, 한 집에서 진득하게 수십년을 살아가는 사람. 아, 이것저것 쑤셔보면서 여기저기 찌르고 다녔던 내 과거가 부끄럽다는 건 아니지만. 산발적으로 흩어진 얄팍한 발걸음들을 돌아보자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는 거지. 홍대 후문에서 음악한다고 깝치던 10년 전의 내가 매디슨가에서 광고회사를 다니는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까. 제법 폼나게 성공적이었던 이력들, 도전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개같이 망해버렸던 이력들, 솔직히 지금은 마냥 다 부끄러워서 말도 못 꺼내겠어.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정말 내 길이 맞나, 이런 고민도 이젠 접을 때도 됐잖아.
- 영어로 생활하는 것이 아무리 익숙해져도 영어가 한국어처럼 수월하고 편안하진 못한데. 또 줄창 영어로만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주 조금씩 한국어가 무뎌지는 것도 느껴. 며칠 전 친구와의 통화에서 버벅댄 건 술기운 때문이기도 했고, 쌓인 피로와 부족한 잠 때문이기도 했으며, 나눌 것 없이 공허해진 마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같잖게도 한국말이 무뎌진 탓도 있었나 봐. 남의 나라 남의 동네를 내 동네 삼아 산다는 게, 정말 별 것 아닌 일 같으면서 가끔은 참 별 것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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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아마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가봐요 :) 이런저런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뒤틀려서 잘못건드린 도미노처럼 계속 끊이질않아요_ 괜찮아지겠져 _
고마워요. 딱히 힘들다고 할 일도 없는데 괜히 자꾸 복잡해지네요.
괜찮아지겠죠. 괜찮아지게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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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초여름에 브루클린 이사와서 거기 계속 살고 있지.
서울 가족들은 또 이사했다고 하던데, 서울 가면 못 찾아갈 듯. -_-;
듣자 하니 몇 년 사이 서울도 꽤 많이 바뀌었다더니 낯설기도 하겠고.
아. 울엄니가 권군 결혼식에 다녀왔다더만 넌 못 봤다고 아쉬워하더라.
주말이니 내가 조만간 전화 한 번 하겠소. 지금은 집에 와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