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 연이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던 스스로에게 흥을 돋우고자, 오랜만에 자토이치를 다시 보았다. 줄거리도 비교적 단순한데다 펀치라인과 주요 장면들까지 거의 외울 정도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즐겁게 신나게 만날 수 있는 영화. 정말이지, 볼수록 작가 겸 감독으로서의 기타노 다케시의 명성이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걸 되새기게 된다.



  • 영화 자토이치의 키워드를 하나만 대라면 나는 리듬감을 꼽고 싶다. 기타노 다케시는 각 장면 단위에서부터 극 전체의 연결과 흐름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박자를 뽑아내고 있다. 애초에 영화란 일방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묶인 서사물이고, 또한 모든 종류의 무술은 원천적으로 박자감에 뿌리를 두므로, 무술/격투를 중심에 둔 영화라면 필연적으로 리듬감에 기댄 서사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자토이치는 독특한 음악적 장치, 군무 장면, 개성적 검투 연출 등을 통해 이 부분을 독창적으로 극대화했으니까. 특히 드라마틱한 선율이나 웅장한 편곡을 배제하고, 타악기 중심으로 편성된 배경음악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절성을 보여준다.



  • 전형적인 사무라이물과 비교하자면 이 영화는 실상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막부 말기, 거시적 갈등이 사라진 미시적 혼란의 시대, 낭인 검객들, 유곽을 중심으로 한 조직폭력배, 떠돌이 기생, 평생을 바치는 복수, 명예를 위한 살인과 자살 등. 주요한 서사 요소를 추리자면 자토이치는 일본식 사무라이 시대극의 뻔한 범주 안에 있으니까. 심지어 (짧은 금발머리의 주인공을 제외하면) 인물들의 복식과 건축물의 형태마저도 전형적인 시대극의 틀을 따르고 있으니, 시공간의 배경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사무라이 프린세스, 아프로 사무라이 등의 퓨전물과는 거리가 멀다.


  • 수도 없이 반복됐던 진부한 소재를 독창적으로 해석해서 재생산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기타노 다케시는 시각적/청각적/시간적 리듬감을 최대한 강화하고 부각시킴으로써, 다분히 뻔한 내용의 115분을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완성해냈다. 음악적 장치를 중심에 둔 개성적 사무라이물이라면 사무라이 픽션, 6현의 사무라이가 더 앞섰다고도 하겠지만. 시대물로서의 충실성, 개봉 당시의 수익성, 대중성, 어느 쪽을 놓고 보아도 결국 자토이치가 한 수 위. 난 그렇게 생각해.



  •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나무와 흙이다. 검객들이 휘두르는 칼날을 제외하고는 금속성 물체가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고, 농기구나 목공 장비들은 나무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으니까. 교각, 건축물, 마룻바닥, 방문, 밥그릇, 탁자, 술상, 목욕통, 가마, 나막신, 장작, 어느 것 하나 나무 아닌 것이 없다. 물론 근대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게다가 일본) 시대물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넘쳐나는 리듬과 효과음의 파도 속에서 챙챙 칼날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재밌는 사실 아닐까. 나막신을 신고 마룻바닥에서 떼로 추는 탭댄스 군무 장면은 목재성 타악 리듬의 정점 .... 극장에서 다시 개봉한다면 한번쯤 또 봐도 좋을 것 같아.
2009/12/27 02:24 2009/12/27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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