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번에 공격해 들어갈 수 있는 최소의 거리를 검도에서는 일보일격 또는 일족일도의 거리라고 부른다. 한 걸음만 박차고 뛰어들면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간격이라는 뜻인데, 칼의 길이가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상대를 온전히 벨 수 없고, 보폭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너무 멀리 있으면 상대에 닿을 수가 없는 거다. 비슷한 개념을 태권도에서는 간합이라고 부르는데, 마찬가지로 중단/상단 발차기로 상대의 몸을 효과적으로 가격할 수 있는 거리를 일컫는다. 역시 너무 가까우면 상대와 뒤엉키게 되고, 너무 멀다면 달려들다 무게 중심을 잃기 십상이지. 참 당연한 말이지만, 검도의 일족일도 거리가 태권도의 간합에 비해서 훨씬 길다. 태권도 선수들은 너무 멀다고 느낄만한 거리를 검도 선수들은 공격 타이밍으로 받아들이고, 검도 선수들이 너무 빡빡하다고 느낄 거리에서 태권도 선수들은 공격 포인트를 잡는 거다.
- 무언가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더라. 같은 상황, 같은 사건이라도 상이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던가. 좋으니 싫으니 해도, 나는 여전히 심리학에서 배운 통계적 검증과 개인차의 관점에서 세상을 재단하고, 언어학에서 배운 음성학/음운론의 틀에 따라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있거든. 경험이 관점을 만들고 또 그 관점이 경험을 만드는 순환의 과정을 생각하자면, 애초에 어떤 경험과 어떤 교육을 통과하느냐가 결정적이라 해야겠지. 나도 가끔은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내 손에 칼이 쥐어졌다면 지금이 공격 거리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곤 하거든.
- 어린 나이에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지금은 최소한의 코딩 능력만 남고, 개발 능력은 모두 소멸했지만 -_-;) 나도 모르게 절차적 알고리즘과 단위적 분석의 사고방식이 뿌리내렸다는 걸 느끼곤 한다. 프로그래밍 관점에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습관처럼 그냥 남아버린 거지. 과제를 단위별로 쪼개고, 수행할 업무를 절차별/구조별로 나누어서 바라보는 버릇. 누군가에게는 천성일지 모르지만, 이게 나에겐 다분히 후천적인 버릇인 것 같아.
- 디자인과 타이포그라피가 생업이 된 후 거리에서 마주치는 간판/포스터/전단/티셔츠가 일일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어떤 글꼴이 어떤 세팅에서 (weight, tracking/kerning, leading) 어떤 배색으로 쓰였는지, 어떤 작업도구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서 어떤 기술로 출력했는지 읽히는 거다. 물론, 웹페이지/애니메이션/플래시 배너 따위도 마찬가지, 어떤 기술에 어떤 도구로 어떤 환경 기반에서 어떻게 개발했는지를 훑어보게 됐다. 일종의 직업병. 누군가는 무심코 흘려버릴 시각정보가 내게는 (원하지 않아도) 집착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 한창 원근법을 공부하던 고등학교 때는 고개만 돌리면 모눈종이마냥 소실점과 방사선과 눈높이가 눈에 들어오더니, 그림 욕심에 미술해부학을 들이파면서부터 사람들의 눈꺼풀/콧날/뱃살/어깨/팔뚝이 저마다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번 알게 된 것은 모르고 넘길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알기 전과는 달라진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생업 때문에 그림 그리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래. 당장 내 손에 연필이 없는데도, 곁에 있는 사람이나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달까.
-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나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테고, 그러한 관점 차이를 느낄 때면 흥미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저마다 갖고 있는 고유의 시각을 안경이라고 한다면, 이 놈의 안경은 세상을 특정 관점에서 매우 정밀하고 특수하게 바라보게 해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닌 다른 관점에서는 바라볼 수 없도록 제한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가령, 왜 문과생들이 이과생 무식하고 답답하다고 하는지, 또 이과생들은 문과생들이 쓸데없는 꿍꿍이에 말만 많다고 하는지, 문과이기도 했고 이과이기도 했던 나는 양쪽 모두 공감이 가면서 또한 공감할 수 없기도 해. 그래서 나는 100% 문과생도 100% 이과생도 못 될 잡종 운명인 거다.
-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해. 늘 그랬고 지금도 그래.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 나와 다른 전문성을 가졌고, 그래서 나와는 다른 안경을 쓴 사람을 만나면, 진심으로 흥미롭고 즐거워. 정말로, 많이 배우고 싶어.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미 숱한 안경을 겹쳐 쓰고 살아온 덕분에 새로운 관점을 느슨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느낌도 받곤 해. 세상을 재단하는 시선이 벌써 웬만큼 자리잡혀서, 그게 잘 치워지질 않는 거지. 근데 이런 딱딱한 틀은 상대방에게도 있거든. 특히 상대방이 과도하게 자기 관점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종용하는 경우에는 거부감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냐. 먹을만큼 먹은 나이, 겪을만큼 겪고 배울만큼 배운 우리들이 이제 와서 어린 아이들처럼 모든 걸 새로 익힐 수는 없잖니. 지금 우리의 최선은 그저 우리가 저마다 고유의 안경을 쓰고 있단 걸 인정하고, 서로의 관점을 부정하면서 막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 정도인 것 같아. 예의를 지키자고,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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