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를 좀 (많이) 마셨다. 아마 내일 아침은 머리가 아프겠지. 어쩌면 속도 울렁거릴 거야. 어쩌겠니, 여기 편의점에선 여명808을 팔지 않는 걸.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마땅한 안주도 없이 꽐라 되도록 쳐마시는 내 꼴이 부끄러운 건가. 술친구도 아쉽고 말동무도 아쉽지만, 따지고 보면 서울 살 때부터 변변한 술친구/말동무 찾긴 힘들었잖아. 세상이 다 멀쩡히 돌아가는데 나만 툴툴대고 있다면 내가 문제인 걸까. 아, 몰라. 술 깨기 전에 잠이나 들어야겠는데.
- 군대 동기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그는 나랑 많이 다른 사람 같았지만 실은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같은 나이, 같은 학번에 같은 군번. 비슷한 고등학교 출신에 비슷한 좌절을 겪고 비슷한 대학문화를 겪다가 비슷한 군생활 이후 비슷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그 친구. 몇 년이 지나도록 전화통화 한 번 못 했어도 아무렇잖게 다시 함께 웃을 수 있는 우리가 고마웠다. 고맙다. 내가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구나.
- 2003년에 난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가 대학원에 입학했고, 오랜 연인에게 일방적 이별 통보도 받았고, 소개팅도 몇 차례 했더랬다. 장난처럼 후루룩 7년이 흘러, 지금 나는 그 시절 대학/대학원 전공과 다른 길을 걷고 있고, 그 때의 오랜 연인과는 연락조차 닿지 않으며, 그 무렵 소개팅녀 두 명은 벌써 결혼까지 했단다. 지금 나에게 예전 내 모습은 얼마나 남아 있는 걸까. 자꾸만 자꾸만 어제의 나를 잊고 버리는 오늘의 나는 오늘을 떳떳하게 살아도 되는 걸까.
- 내가 너무 똑똑한 척 하는 거니. 요즘은 간혹 그런 생각을 해. 이해하고 이해받는 일에서 멀어진 내 모습이 결국 내 책임인 건 아닐까. 이리로 가도 저리로 가도 답답해지긴 매 한가지. 내가 쌓은 담이 나를 가두고 만다.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내 할미는 나와 거침없이 통했지만, 잘났다는 대학에서 석박사 땄다는 그들과 내가 통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건 왜일까. 나도 내가 답답한데 넌들 내가 답답하지 않겠니. 미안해. 미안하다.
-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나이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항상 애썼어. 그렇지만 도무지 편해지질 않는구나. 술을 마시지 않고는 한 마디 떼기가 어렵고, 잠에서 깨어 거울 앞에 서는 순간들이 가장 불편해. 내가 나에게 씌워 둔 굴레들이 조금씩 내 숨통을 조인다. 내가 여태 밟아온 걸음들, 지금 걷고 있는 걸음들이 하나같이 바늘방석처럼 아픈데. 도망쳐도 도망쳐도 도망쳐지질 않으니, 서른이 넘었어도 나는 아직 정신없는 꼬맹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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