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알콜중독자.

unspoken words 2010/01/31 04:19
  • 계획에 없던 지난 밤 폭음으로 아침에 그리 고생을 해놓고도, 또 생각없이 맥주캔을 잡았다. 웃겨. 점심 나절에는 전철을 타고 외출하는 길에 숙취 섞인 멀미가 괴로워 혼자 털레털레 해장국 먹으러 갔었다니까. 해장국 뚝배기와 밥공기는 물론 밑반찬 접시까지 싹싹 비우고 나오자니 헛웃음이 나더라. 혼자 술 쳐마시고 젖어버리는 꼴도, 혼자 숙취에 시달리는 꼴도, 혼자 선지해장국을 사먹는 꼴도, 다 우습더라고. 그래서 오늘도 조금 마신다. 한심한 내 꼴이 우스워서.


  • 오랜만에 기타 가방을 열었었다. 잠깐만 만져보고 도로 넣으려고 했는데, 깔짝깔짝 튕기다 보니 얼결에 네 시간이 훌쩍 흐르데. 오래된 하드디스크에 오래도록 쌓여온 악보들을 뒤적이자니 또 쓸데없는 향수에 젖었다. 자질구레 시시콜콜한 기억들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도 병이야. 이러니 내가 술을 안 마실 수 있겠냐고. 악보마다 마디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의 장면인가가 묻어있다. 차마 직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발가벗은 감정들,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괜히 부끄러워져.


  • 프리챌에 몇 년만에 접속해 봤어. 10년이 다 된 커뮤니티 게시판들이 박제처럼 멀쩡히 눈 뜨고 있더라. 미이라가 되어버린 과거의 흔적들을 더듬는 것이 조금은 변태적이구나 생각했지. 씁쓸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기분. 내가 한때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사실과 그 누군가들이 이젠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다 꿈같아. 이름마저 낯선 그들과 내가 길게건 짧게건 한 지붕 아래 있었다는 것도 그냥 거짓말같다. 동기, 선배, 선생, 연인, 친구, 무엇이 됐건. 지금 우리에겐 몽땅 신기루가 됐으니.


  • 이젠 학교 그만 다니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만, 실은 나도 학교 다니는 게 좋았던 건지 몰라.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고, 전공을 그만둘 때도 대학원을 뛰쳐나올 때도 구실은 차고 넘쳤지만. 지금 보면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채이곤 하거든. 아는 것과 알고 싶은 것에 대한 허영심, 학벌과 학위에 대한 사치심이 떠나질 않는가 보다. 인정해. 나같은 인간형을 가장 자연스럽게 품어줄 곳은 역시 학교라는 거.


  • 몸 사리는 버릇이 갑옷처럼 굳어졌다. 난 상처주는 일도 싫고 상처받는 일도 싫지만, 굳이 따지자면 상처받는 쪽이 더 싫으니까. 다치지 않으려면 몸 사리고 소심하게 조심스럽게 굴어야지. 누가 찌르려 들지 않아도 방패부터 들이미는 어리석은 습관. 이건 껍질 두꺼운 벌레와 다를 바가 없다. 아, 술 깨기 전에 잠이나 들어야겠다.
2010/01/31 04:19 2010/01/31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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