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 예술의 과정에 완성이란 없다고 드가는 말했었대. 그저 마음을 정하는 순간 멈출 뿐이라고. 딱 잘라진 시작과 끝, 완성과 미완성의 과격한 구분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정곡을 찌르는 조언은 아닌가 이 말. 당연한 얘기지만, 완벽/완성이란 건 결국 이상일 뿐이잖아. 이데아. 사실은 없는 거.


  • 듀크 뉴켐이라는 초대박 게임이 있었어. 1996년에 PC용으로 발매됐었는데, 시장에 나오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사상 초유의 히트를 친 거야. 개발자들은 평생 놀고 먹어도 될 정도의 떼돈을 벌었고, 조만간 후속작을 내놓겠다며 차기작 개발에 들어갔지. 근데 1997년에 나온다던 후속작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이게 10년이 넘도록 미뤄지기만 했어. 컴퓨터 기술이라는 게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놈이다 보니, 게임 개발이 대충 마무리되나 싶으면 신기술이 나오고 신제품이 나오고. 개발팀은 세계 최고의 역작을 만들려는 완벽주의적 욕심 때문에 그때마다 프로젝트를 갈아엎고 갈아엎고 그랬대. 그렇게 10여년동안 "개발만" 하다가 결국 작년에 공식적으로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해 버렸지. 돈이 다 떨어졌거든. 완벽한 걸 만들려고 집착하다가 완벽한 파토가 난 사건.


  •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끊임없이 상기하는 명제가 실은 딱 이거야. 절대 (내가)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다는 거. 나는 정해진 기한 내에 결과물을 내야 하고, 시시콜콜 완벽주의가 시간을 잡아먹는다면 그걸 가차없이 쳐내야 한다는 거. 하나하나 꼼꼼하게 점 찍고 선 긋지 않으면 성에 안 차니까, 그런 성질머리로 평생 살아왔으니까, 이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 난. 근데 촉박한 데드라인에 쫓기면서 후다닥 작업해놓고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부사장한테 검토를 받을 때마다 "아 이거 날림으로 했다고 욕먹고 짤리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만, 뜻밖에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적이 많았거든. 내가 내 목을 졸라. 내가 내 숨통을 조여. 완성이란 건 없는 건데. 자꾸만 잊고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갖추려고만 해.


  • 제대로 하자, 온전하게 하자는 욕심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여기까지 이끈 것도 사실이지만, 그 똑같은 (ㅈ같은 -_-;) 욕심 때문에 여지껏 속시원히 많은 것들을 이뤄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 하려다가 아예 안 해버리는 거지. 어리석은 짓인데, 나도 아는데. 느슨해지는 게 쉽지 않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이지. 응?
2010/02/17 13:43 2010/02/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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