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 오랜만에 한인타운 분식점에 찾아가 싸구려 부페로 점심 겸 저녁을 때웠다. 날도 화창하겠다, 지인과 즐겁게 통화도 했겠다, 그럭저럭 기분도 가벼운 오후였는데. 딱딱하게 식은 편육 몇 점을 씹다가 갑자기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배가 많이 고팠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어 음식이 잘 삼켜지지도 않았어. 물과 함께 억지로 한꺼번에 씹어 넘기곤 서둘러 가게를 나섰지. 나는 배불리 먹고 있다, 나는 기름진 고기를 씹고 있다, 죄책감과 미안함이 목을 졸라 숨이 막혔다.


  • 대학원에 다니며 회사일을 겸하던 2003년 가을, 오랜만에 집에 앉아있는데 할머니가 오셨어. 언제나처럼 거하게 저녁상을 차려주려고 하셨지만, 그날 난 유난히 집밥 먹기가 싫었거든. 며칠간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삼각김밥이니 햄버거, 짜장면 따위로 대충 끼니를 때워온 끝이라, 난 뭔가 특별하고 맛난 걸 먹고 싶었어. 그래서 할머니가 차려준다던 밥상을 적당히 만류하곤, 엄니와 할매와 함께 학교 앞 나그네 파전으로 굳이 차를 몰고 나갔었지. 파전 하나에 고추튀김 몇 개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와 먹으려는데, 할머니는 "뭐 그까짓 거, 난 안 먹으련다"하면서 토라진 얼굴로 끝내 입도 대지 않으셨어.


  • 2007년 12월 어느 밤, 전화를 받고 황황히 달려가 보니 할머니는 조용히 방에 누워 계셨고.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하고 어지러워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것 같았다. 할머니, 할머니, 불러보고 싶었는데 입조차 떨어지질 않아 묵묵히 눈물만 흘렀어.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심장을 눌러 견딜 수가 없었다. 모질고 무심했던 내 말과 행동들이 해일처럼 몰려들더라. 끊으려던 담배를 몇 대나 피워 물면서 찬바람을 맞아도 괴롭게 뜨거워진 가슴팍이 편해지질 않았어. 구급대가 도착해 사망진단을 내리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차량이 출발하기까지, 몇 시간동안 우린 태연한 듯 서있었지만 돌아보면 실은 누구도 제 정신은 아니었다.


  • 장례를 마칠 때까지 수일간 하루에 세 시간도 제대로 잔 적 없었지만, 장지에서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때까지 어째선지 그리 피곤하단 느낌을 받지 못했어. 끼니 때를 넘겨도 그닥 배가 고프지 않았고, 그냥 하루종일 담배만 쉬지 않고 피웠더랬지. 3일째 밤이었나,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한산해진 장례식장에서 남은 음식을 몇 점 주워먹는데 갑자기 울컥 못 견디게 괴로워졌어. 할매가 챙겨주던 밥 한 술, 반찬 몇 점을 물리던 생각, 말년에 곡기를 끊다시피 누워만 계시던 할매 생각이 겹치면서, 이렇게 아무렇잖게 고깃점을 집어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참을 수 없이 미웠거든. 또 담배를 피우고, 다시 또 한 대 피우고, 곧 한 대 피우고. 그렇게 그 해의 12월은 이렇다 할 기억도 없이 그저 하얗게 잿더미로만 남았다.


  • 지난 달부터 후원하기 시작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여섯살 꼬마 네우리는 산수와 문법을 좋아한단다. 노래하고 춤추기를 즐긴다는 이 친구는 시멘트로 된 단칸방 건물에서 엄마 아빠랑 셋이 산대. 부모는 내 또래라는데, 한달 평균 수입이 내 하루치 일당에도 못 미친다더라고. 멋적게 수줍게 웃고 있는 네우리 어린이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짠해지곤 해. 할매 얼굴 엄니 얼굴 조카 얼굴이 겹쳐 보여. 당장 몇 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닐 수도 있는 처지라는 여린 꼬마 앞에서 내가 무슨 불합리/불평등을 얘기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겠어. 게걸스레 라면을 두 개씩 끓여먹고 계란을 세 개씩 삶아먹으면서도 허망하다 갑갑하다 한숨쉬는 내 꼴이 부끄럽고 지랄맞아.


  • 장례식장 밥상에 올랐던 고기반찬, 방계리 식당에서 먹었던 육개장. 배시시 웃으며 내 턱에 난 갈색수염을 쓰다듬던 할매 손길. 가끔씩 너무 생생하게 살아나는 감각에 소스라치게 얼어붙게 돼. 난 내가 부끄럽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난 부끄러운 게 많았던가 봐. 밥만 먹어도 죄인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면.
2010/04/24 23:06 2010/04/24 23:06
http://www.baadaa.net/kc/trackback/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