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 내 관심범위는 대개 개인 차원에 머물렀다. 친구를 사귀어도 떼로 몰려다니기보단 두어명이 조곤조곤. 운동을 해도 농구/축구/야구보다는 검도/태권도/달리기. 전공을 택할 때에도 사회학/경제학보다는 언어학/심리학. 언어학을 공부해도 야심찬 코퍼스 구축보다는 기호학/음성학/화용론. 심리학을 공부해도 조직/산업/문화보다는 생리/이상/인지. 그나마 '공부하는 활동' 자체의 정치적 성격 때문에 아예 홀까닥 접어버리고 말았지만.


  • 큰 회사나 큰 기관, 큰 조직에 소속된대도 난 늘 프리랜서였고, 딱히 윗사람 눈치를 보거나 윗사람이 되고 싶단 야망을 품지도 않았더랬지. 물론 군대에서야 문자 그대로 계급조직의 공기를 마시며 계급밥을 먹으며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거기서도 진급에 따른 호사라든가, 짬밥으로 호통치는 권력 따위엔 흥미가 없었어. 그냥, 난 그런 게 재미가 없고 별 보람도 못 느끼겠으니까.


  • 어쩌다 보니 또 큰 회사에 자리를 잡았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이 회사에서 입지가 굳어지고 있다. 책임이 늘어나고 의무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결정해야 하는 일도 늘어나고 지시해야 할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 높은 사람들을 만나 소개받고 인사하고, 고급 클라이언트들과 직접 상대하고 소통하고. 보조 디자이너가 붙고, 쭐레쭐레 눈치보며 내 지시를 기다리고 ... 그래. 나쁘진 않아. 뿌듯한 것도 사실이고. 근데 어색한 느낌이 영 떠나질 않아.


  • 나를 대하는 말투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졌어. 독일사람 우리 사장은 몇 달 전에 처음 고용계약서 쓸 때만 해도 내게 은근 고압적이더니, 자기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우리 모회사의 실권자들이 중간책없이 나랑 직접 소통을 시작하면서부터 나한테 한결 부드러워졌고. 홍콩사람 우리 부사장은 이따금 농담처럼 말 잘 안 들으면 짤라버린다고 압박하더니, 정작 내가 회사 나가겠다니까 친한 척 어깨동무하며 남아달라 부탁하더라. 요즘엔 오며가며 어깨 두들기고 좋아한다 고백하고 (-_-;) 윙크하고 난리났지. 작년에 인턴하면서 처음 알게 된 디자이너 레이첼 양. 작년 여름엔 마주쳐도 인사 한 번 않더니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 보조 자격으로 재채용되고 나니 생글생글 먼저 인사하고 농담 걸고 노닥대려 해. 별 것 아닌 얘기를 해도 과도하게 귀를 기울이고, 재미없는 말에도 오버해서 깔깔 웃고. 뭐, 총체적으로 쓴웃음 나는 상황이랄까.


  • 물론 무시당하는 것보다야 존중받는 쪽이 낫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도 편하고 수월한 게 좋고. 하지만 난 굳이 선택하라면 호들갑스런 관심보다는 심심한 무관심을 고르겠어. 내게 맡겨진 일들 책임지고 잘 해 줄 테니까, 결정하고 지시해야 되는 게 있다면 후딱후딱 해 줄 테니까, 필요 이상으로 섞이고 재고 따지고 얽히지 말았으면 좋겠어. 신경쓰기 귀찮고 피곤하잖아. 서로 밋밋하게 편안하게 가자고 좀.
2010/04/30 14:49 2010/04/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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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4/30 2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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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한 2010/04/30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의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긴 하잖아요?
      야심차고 포부 크고 상승욕 강하고, 뭐 그런 사람들.
      오바스런 관심은 그런 사람들한테 쏟아주면 좋겠어요, 나 말고. (^^;)

  2. 맑아릿다 2010/05/01 0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관심 1g만 먹으면 좋다고 팔짝팔짝 뛰는 1인 <-

    '야심찬 코퍼스 구축'에서 잠시 포풍눔물을 쏟았습니다ㅠ_ㅠ 한 달을 고스란히 쏟아부었는데 여태 17만 어절 OTL ㅋㅋㅋㅋㅋㅋ하지만 관심분야에서 화용론이 겹치는군요. 음성학은 조금 무서웠어요 낄낄.

    아무튼 친구를 만들려면 잘나가면 되는구나-라는, 본질과 어긋난 교훈을 얻고 갑니다(?)

    • 범한 2010/05/01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가 관심있는 사람한테 받는 관심"은 좋아요 저도. (^^)
      그치만 "얘한테 관심두면 쓸모있겠다"식의 속보이는 관심은 불편하더라구요.
      주위 사람들이 굽신대고 살살대는 모습을 즐기는 성격은 못 되려나 봅니다.

      실은 화용론보다는 음성학/음운론 수업에 더 열중했고,
      그보다는 기호학 계열에 더 많이 몰입하는 편이었어요.
      전산언어학이나 코퍼스 응용 방면은 (기술적 소질에는 어울리지만 -_-;)
      아무래도 혼자 틀어박히기보단 막대한 교류가 필요한 공부라선가, 은근 관심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