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이좋은 흑인부자를 마주쳤어. 정신없이 졸다가 노랫소리에 눈을 떴는데, 맞은편에 앉은 부자가 신나게 흥얼흥얼 하하호호 노닥이고 있더라고. 똑같이 머리를 빡빡 밀고 흰 박스티에 청바지와 농구화 차림으로 나란히 앉아서 히히덕 시시덕 깔깔. 유치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한껏 행복해하는 모습이 참 좋아서 나도 같이 웃었어. 아빠는 내 또래, 아들은 내 조카 또래쯤 돼 보였는데, 가뜩이나 닮은 이목구비에 옷차림까지 똑같으니 마치 TV 드라마의 한 장면같았다.
- 지난 며칠 사이에 타블로도 이적 씨도 아빠가 됐대. JK 형은 아빠가 된지 이미 몇 년 됐고, 조PD는 벌써 두 번째 자식을 얻었고. 윤도현 씨는 다 큰 딸자식의 아부지가 되어 있고. 새삼스럽지만 우리 누나도 엄마 4년차, 고교 동창 J양도 어느덧 엄마 3년차에 접어들었네. 사포처럼 거칠던 음악꾼들이 살가운 아부지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마냥 여고생 여대생같던 오랜 지인들이 번듯한 엄마가 되는 것도, 뭐랄까, 신기해. 적당한 말을 못 찾겠는데, 그냥, 신기해. 나는 겪어보지 못한 진정한 어른들의 세계(-_-)같달까. 우리 조카 유현이와 J양 아들 준민이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 보면서 꾸준히 신기해 해야겠다.
- 일이 지독하게 많을 때, 특히 못 마친 일감이 있어서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이어가야 할 때, 잠자리에 들면 어김없이 일을 계속하는 꿈을 꿔. 그냥 막연히 "회사꿈"이 아니라, 정말 너무 생생하게 "일하는 꿈". 포토샵/인디자인/일러스트레이터를 빡시게 돌리고, 12층/19층에 올라가서 회의하고 내려오고, 인쇄장비를 돌리고 검토받고 전화 돌리고 메일을 주고받는 꿈. 그러다 일어나면 몇 시간을 잤지만 몇 시간을 일한 거나 진배없으니, 자도 잔 것같지 않아. 억울한 노릇이지. 내가 꽤 예민한 사람이긴 한가 보다.
- 어제는 하루종일 일하느라 정신없어서 밥 먹는 걸 깜빡하는 통에 급격한 저혈당 증세로 밤에 꼴딱 넘어갈 뻔했어. 두통과 욕지기, 무기력, 뭐 그런 거. 공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끼니 때가 되면 꼬박꼬박 간단하게라도 챙겨먹는 습관이 필요하겠어. 가끔씩 이렇게 지독한 두통에 쩔쩔매고 시달릴 때면 안 아프고 멀쩡한 몸상태가 얼마나 고마운 건지 되새기곤 해.
- 나는 "아는 일"에 능하지만 "느끼는 일"에 취약해. 굳이 변명하자면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생겨난 성향인데, 아프고 뜨겁고 괴롭고 무섭고 겁나는 것들을 매번 생생하고 철렁하게 느끼면서 살기는 너무 벅차니까. 괜찮다, 아무렇잖다, 덤덤하다, 스스로의 느낌을 쌩까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하다보니 언젠가부터 그냥 총체적으로 무뎌져왔어. 처음엔 정서적인 자극에만 무뎌진 줄 알았는데, 신체적인 통각에도 많이 둔감해졌더라고. 배고파도 잘 모르고, 압정이 뒷꿈치에 박혀도 펄펄 뛰지 않고. 웬만큼 못 견디게 지독한 수준에 다다르기 전에는 의식이 무의식적으로 감각 지각을 무시해 버리는 듯.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상태. 아니,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거지. 바보같이.
- 며칠 전에는 김광석 아저씨의 노래를 듣다가 처음 사랑니 발치 수술을 받던 때가 생각났어. 치과의사가 거대한 집게로 사랑니를 우드득 우드득 비틀어가며 잡아뽑았는데, 온몸의 털이 다 바짝 일어서는 것처럼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했지만 정작 환부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거든. 생이빨을 잡아 뽑아서 몰아치는 고통을 온몸 신경들이 다 알고 비명을 질러대는데, 막상 그 통각을 직접 전달하는 통로는 마취로 차단된 상태. 김광석 씨의 처연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어딘가 서글프고 아픈 듯하지만 딱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어서 대체적으로 막연히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슬퍼도 슬픈 줄 모르는 거.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차단된 기분. 이것도 짐이야. 한참 괜찮은 척 못 느끼고 살아가다 문득 그 밀린 감각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면 숨도 못 쉬겠거든.
- 어제 오늘 날씨가 심하게 좋아졌다. 여름처럼 덥지 않고 겨울처럼 춥지 않은 기온,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은 햇볕.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옷차림 가벼워진만큼 표정도 가벼워졌고. 총체적인 공기가 살짝 신나고 들떠있는 듯. 비록 나는 주말 내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회사에 쳐박혀 있는 신세지만, 햇볕 보송한 하늘은 보기 좋다. 좋아. 언젠가 나도 산보하러 나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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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친구 결혼식 참석하러 인천 간 김에 월미도까지 가서 놀다 왔는데, 사이좋은 흑인 가족이 왔더라고요:) 근데 어째 봄인데 아저씨는 반팔에 슬리퍼 차림이고 꼬마 둘은 오종종한 하늘색/핑크색 <털코트>를 입고 있어서 저 가족은 사진찍었다가 나중에 보면 계절을 짐작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ㅋㅋㅋ
반팔 아빠에 털코트 자식들이라니. 완전 극단이네요. -_-;
지하철에서 본 빡빡이 부자가 서로 머리 비비적대고 호들갑 떨며 노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몰래 핸드폰으로 사진 찍었는데 깜빡하고 안 올렸어요. 조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