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mhan Yu
  • 십수년 전에 사라지듯 연이 끊겼던 친구와 홀연 연락이 닿았다. 철도 없고 버릇도 없이 고민만 많던 뜨거운 중학생 시절을 가까이에서 함께 보낸 동생.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며 공항에서 갑자기 걸어온 짧은 작별 통화가 나 고1 때였고.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와 미국에서 자리잡기까지, 십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우리는 단 한 번의 연락이 없이 지냈다. 까칠하고 삐뚤어졌지만 재미있는 '날라리' 중학생, 내 기억 속에 걔는 그 정도 이미지로 남았더랬다.


  • 올해 초에 한국에 돌아왔단다. 무덤덤한 싸이월드 쪽지 한 장이 자연스럽게 전화통화로 이어지고, 10대였던 우리는 30대가 된 서로의 소식을 짧게 주고받았다. 집안 사정상 황황히 한국을 떠나야 했던 일, 어린 나이에 홀로 이국생활을 하며 겪은 어려움들, 유학중 돌아가신 아버지, 귀국하자마자 불거진 군복무 문제. 짤막한 몇 마디 얘기만 듣고도 마음이 짠해지더라. 부산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는 그 아이, "나는 중학교 때 막 술/담배했는데, 학생들이 숙제 안 해온다고 내가 어떻게 혼내겠어" 웃으며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어. 철없게 날 서있던 꼬맹이가 이렇게 속깊은 어른이 되어 있구나.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고민들을 차분히 얘기하는 그를 보자니 가슴이 뜨겁고 목이 말라왔다.


  • 전화를 끊고 외출을 준비하며 거울 앞에 섰다. 신문 배달해 번 돈으로 청바지를 사던 풋풋한 중학생은 이제 거울 속에 없고, 철든 척 점잖은 척 어깨에 힘을 주는 반쪽짜리 어른이 보인다. 덧나고 덧난 상처들이 남긴 흉터와 그 흉터를 숨기려 뒤집어 쓴 험상궂은 얼굴. 나도 아는 것이 쌓이고 겪은 것이 쌓인만큼 성숙하긴 한 걸까. 철 모르고 고함치며 거리를 활보하던 중학생 때가 그립진 않지만, 그저 지금 내 사는 모습에 떳떳하고 싶다.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은 길, 한참 걷다 보면 잃었던 길벗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겠지.
2010/05/22 15:24 2010/05/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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