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쉬르의 이론을 수십년 공부한 사람들은 정말 소쉬르의 생각을 물려받은 걸까. 그는 백년쯤 전에 죽었고, 죽기 전에 책 한 권 제대로 남기지 않았는데.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 노트를 정리해 만들었다는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가 과연 그의 이론을 얼마나 충실히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까. 소쉬르의 강의를 직접 들었던 사람들조차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그가 그랬다더라, 이렇게 생각했다더라"하는 주석과 강평과 해석 뿐이다. 평생 소쉬르를 읽는대도 우리는 끝내 소쉬르를 읽을 수는 없어. 그냥 짐작할 수밖에.
-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도 막상 예수 자신이 써내려간 사상 체계를 접해본 적은 없다. 플라톤의 "대화"가, 사도들의 "복음서"가, 과연 원작자들의 사상을 얼마나 온전히 전해주고 있는 걸까. 그나마 소쉬르는 겨우 100여년 전 사람이라지만,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벌써 2천년도 훌쩍 넘긴 옛날 옛적 사람들인데. 그의 제자들, 그 제자들의 제자들, 또 그 제자들, 다시 그 제자들과 학생들에게 전해지며 까마득한 세대를 거쳐 쌓여온 주석과 강평들은 과연 원형에 얼마나 닮아있는 걸까.
- 말이란 단 한 사람의 중재자만 거쳐도 뜻이 달라지는 법. 첫 입을 열었던 사람은 씨앗이 되어, 뒤이은 수많은 입과 혀에 묻히며 나무로 숲으로 자라난다. 말이 글이 되고 이론으로 사상으로 공고히 자리잡은 뒤에는 이내 말만 남고 사람은 사라져. 그렇게 거대해진 생각의 틀은 설령 그 말을 처음 뱉은 사람이 돌아온다고 해도 흔들 수 없을 거다. 소쉬르가 살아와서 소위 '소쉬르 구조주의'나 '소쉬르 기호학'을 두고 "내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며 수정하려 든다면, '일반언어학 강의'를 토대로 20세기에 구축된 '소쉬르' 체계는 변화를 허락할까. 소크라테스가 살아난다면, 예수가 돌아온다면, 그래서 자신들의 가르침에 축적된 깨알같은 주석들을 질타한다면, 오늘의 철학교수들과 교회의 목자들은 자신들의 "진리"에 대한 믿음을 꺾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 이차 삼차 주석과 강해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유령처럼 신앙이 되는 막연한 믿음이 두렵다는 거지. 최진실이 이랬다더라, 정선희가 저랬다더라. 타블로가 어쨌다더라, 박진영이 저쨌다더라. 노무현 가라사대, 이명박 왈. 끝도 없이 쏟아지는 전언들과, 거기에 파리떼처럼 달라붙어 쉬지 않고 알을 까는 추가적인 전언들. 과연 그 안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담겨 있겠느냐고. 학교에서, 역사에서, 언론에서, 그렇게 누군가는 전설이 되고, 누군가는 성인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파렴치한 짐승이 되고 말지. 소쉬르와 예수의 '원래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우리라면, 그만큼의 집단적 고민조차 부여되지 않은 장삼이사 서로의 말만큼은 마음 열고 머리 열고 꼼꼼히 들어주는 게 예의 아니겠어.
- 결론 내리기 전에, 마냥 옳다고 고집부리기 전에. 무턱대고 침 튀기며 험한 말부터 뱉어내기 전에. 조금만 열자. 서둘지 말고 천천히. 우린 배운 사람들이잖아. 이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삶 자체에 대한 예의이지만, 무엇보다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 자존심을 지켜야지 .... (다시 읽어보니 두서없다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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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좋네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 건강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한번도만난적없지만 얼굴만 아는/그냥누구한테전해들은본적없는 어떤사람을 가지고 이말저말 (잘알지도못하면서) 흩날리는 꼴 정말 보기싫죠 . 그런얘기를 들으면 괜히 내가 당사자에게 미안해지고 그래요 .
정말 천천히 . 자기자신에 대한예의인듯 :)
잘읽었어요 :)
사람 사이는 언제나 조심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