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번씩 방향이 뒤엉켰지만 그래도 나는 연속선 상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과생이 문과생이 되었다가 다시 이과로 돌아가고. 한 가지 전공으로 시작한 대학생활을 다른 전공으로 마쳤어도.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몇 년을 살았더래도. 들쑥날쑥 헤메이던 과정이나마 나름의 연결성이 있다 믿었었다. 이리 걷던 걸음을 저리 옮기고, 이내 다시 다른 방향으로 옮아가기를 반복하면서도. 임의적/산발적/즉흥적으로 걷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갈지자로 그어진 흔적일지언정, 그래도 끊어진 적은 없었으니까.
- 걷고 있던 연속선을 놓쳤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은 대학원 중퇴후 뒤늦게 군대에 가서였다. 덜컥, 나는 원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았던 길 위에 놓이게 되었고, 스스로 "왜 여기 있는가" "왜 하고 있는가" 정당화할 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됐다. 폭력적인 분위기 속에 파묻혀 사는 일 자체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나를 나로 만드는 근거"를 잃었다는 상실감이었다. 나를 기억하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차단되어 지내자니, 내가 '선택해서 걸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걸음들이 하나같이 꿈처럼 느껴지더라. 어쩌면 내가 밟고 있다고 믿었던 연속선이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 여전히 나는 밤잠을 설치곤 해. 타지 생활도 어느덧 만 3년이 됐고, 낯선 나라에서 낯선 바닥에 뛰어들었다는 말조차 새삼스럽지만. 파편이 된 기억들을 열심히 짜맞춰도 도무지 큰 윤곽은 보이질 않아. 일관된 흐름, 설명 가능한 연속성, 정당화할 수 있는 전후관계, 그런 건 애초에 없었던 거라고 되뇌어 보지만. 생각에 집착하는 버릇은 잘 놓아지질 않는다. 고민에 휩싸이는 무서운 밤들, 달리지 않으면 잠들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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